함석헌 이미지
함석헌(1901~1989)
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권 운동가,
시인, 교육자, 사상가, 언론인, 역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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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0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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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3월 13일 평북 용천군 부라면 원성동에서 태어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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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0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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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교회에 나가다. 덕일학교 입학하다. 학습교인이 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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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1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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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신의주 공립 양시소학교에 들어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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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1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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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공립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다. 황득순과 결혼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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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1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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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3.1만세 학생시위에 앞장서다.
- 김마리아 강연 참석후 “빠르나 급하지 않게” 걷는 습관을 평생 걸음걸이로 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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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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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오산학교 졸업, 동경 유학을 떠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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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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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에 입학, 재일본조선교육연구회 창립회원이 되다.
- 시인 셸리를 “인생의 친구”로 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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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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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신앙 동지들과 함께 <성서조선>을 창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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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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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동경고등사범학교 졸업과 동시에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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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3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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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<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> 발표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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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3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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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오산고등보통학교 교원을 사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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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4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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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계우회 사건으로 평양 대동경찰서 수감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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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4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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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‘성서조선’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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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4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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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으로 재임 중 “신의주 학생사건” 주범으로 몰려 소련군에 의해 처형과 유배의 위기에 처해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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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4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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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월남하다. 시 <그 사람을 가졌는가>를 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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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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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시집 <수평선 너머>를 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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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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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개인 잡지 <말씀>을 창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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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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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<사상계>에 ‘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’를 발표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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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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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씨알농장을 시작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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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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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<사상계>에 발표한 ‘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’ 때문에 이승만 정부에 의해 투옥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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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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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<5.16을 어떻게 볼 것인가>와 <인간혁명>을 발표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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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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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군사정권을 비판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나서다. 사상계사가 제정한 월남언론상을 받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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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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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한일협정을 반대하다. <뜻으로 본 한국역사>를 출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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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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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삼선개헌 반대투쟁에 나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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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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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월간 <씨알의 소리>를 창간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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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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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인도에서 간디의 제자 비노바 바베를 만나다. 전태일 1주기 추모 집회를 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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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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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같이 살기 운동을 제창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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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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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구화고등공민학교를 운영하면서 씨알교육의 터를 닦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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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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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유신체제 철폐를 위한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대표가 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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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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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민주국민헌장을 발표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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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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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3.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여 군법회의에서 징역8년을 선고받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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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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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부인 황득순이 별세하다. 북괴란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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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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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다. YWCA 위장 결혼 사건으로 구금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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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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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1년을 선고받고 복권되다. <씨알의 소리>가 두 번째로 폐간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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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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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원효로 4가 70번지에서 본 기념관 자리인 쌍문동으로 옮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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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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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번째로 추천되다. 쌍문동 가옥이 완전히 불에 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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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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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민주교육실천협의회 창립식에서 ‘국민학교’라는 명칭을 고치자고 주장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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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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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동아일보사가 제정한 제1회 인촌언론상을 수상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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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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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88서울올림픽 평화대회 추진위원회 공동의장을 맡다. 자신의 몸을 실험용으로 오산고등학교에 기증할 뜻을 밝히다. <씨알의 소리> 복간호를 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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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8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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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2월 4일 새벽에 영면하다.